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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물 뻥튀기로 엄청난 대출금을 챙긴 사건, 샐러드유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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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의 사례는 종류도 다양하고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기업들의 금융사기에서 보이는 공통적으로 보이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은행의 대출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통은 담보물이 있어야 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담보물은 대출받는 금액에 비해 가치가 커야 가능하다. 하지만 은행의 까다로운 검사를 간단한 방법으로 속이고 어마어마하게 뻥튀기해 대출받아 챙기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샐러드유 스캔들에 대한 배경지식

 

1. 안토니 티노 드 엔젤리스(Anthony Tino De Angelis) : 1915년 생으로 브룽크스의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직 채 성인이 되지 않은 10대의 나이에 육류와 생선시장에서 2백 명이 넘는 직원을 관리했다. 그는 새로운 전국 학교 급식법에 따라 특정 가격 요구 사항이 있는 경우 거의 모든 종류의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활용하고자 Adolph Gobel Company를 인수하고는 즉시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에 고기 대금으로 3만 천 달러라는 과도한 비용을 청구했지만 그의 회사가 납품한 것은 인증되지 않은 출처의 납품처에서 제공받은 고기 200만 파운드였다. 이 일 이후로 Adolph Gobel Company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이후 뉴저지 주 바욘에서 식물성 기름의 선물 거래 중개인으로 자리 잡았다. 

2. Food for Peace : 미국의 평화 식량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에 식량 지원을 제공해 왔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평화 식품법(Food for Peace Act)을 통해 자금이 지원되었고 지금은 경쟁적인 과정을 통해 미국 농민들로부터 직접 기부할 식량을 구매해서 지원한다. 1948년 마샬 플랜으로 미국 식량 지원 프로그램의 토대를 마련되었으며 그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은 유럽 국가들은 이후에 주요 국제 기부자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근 또는 기타 긴급 구호 요구 사항 해결, 영양실조 퇴치, 기아·사망 ·질병의 원인을 완화, 경제 및 지역사회 발전 촉진, 건전한 환경 실천 장려, 먹이 주기 프로그램 실시 등의 상황에서는 긴급 및 개발 식량 지원 프로그램을 발동하여 미국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승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샐러드유 사기사건의 진행

드 엔젤리스는 전국 학교 급식법 사건으로 운영하던 회사는 파산되고 자신은 감옥에서 실형을 복역하고서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정책을 활용하면 자신이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쪽으로 집중한 것이다. 이후 정부가 진행하는 평화 식량 프로그램을 공략하기 위해 식물성 기름 정제회사 Allied Crude를 설립했다. 이 업체에서는 곡물 수출업체들의 후원을 받아 대량의 표준 이하 쇼트닝 및 기타 식물성 기름 제품을 유럽으로 운송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하지만 점차 유럽과 원자재 시장의 주요 업체로 성장했으며 이후에는 면화와 대두 분야로 사업분야를 확장했다. 

1960년대 초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x 아멕스)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현장 창고업을 새로 신설했다. 상품이나 원자재의 재고를 담보로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멕스는 당사의 창고에 있는 담보에 대해 창고 영수증을 발행해 주었고 이 영수증은 은행이나 중개인에게 제시되면 현금으로 할인되어 제공된다.

드 엔젤리스는 창고영수증의 특징과 기름이 물에 뜬다는 것을 이용해서 샐러드유로 가득 채운 것처럼 보이도록 탱크를 위장하고는 검사관이 화물을 확인하게 한 후 그 기름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수백만 달러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탱크에는 대부분 기름대신 물로 채워져 있었고 조사관을 속이기 위해 사용된 샐러드유는 고작 몇 피트정도였다. 하지만 아멕스는 드 안젤리스에게 관대했고 사기행각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이런 위장 방법으로 총담보로 제공한 대두유는 18억 파운드라고 잡혔고 1억 8천만 달러를 대출받은 것이다. 이 당시 담보로 잡힌 대두유의 재고량은 미국 전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고분량도 초과할 정도였다고.

 

 

샐러드유 스캔들의 주동자 드 안젤리스의 느낌 이미지
돈을 들고 도망가는 사기꾼같은 뒷모습

 

샐러드유 사기사건의 결말

드 엔젤리스의 속셈은 대두유 시장을 독점해서 가격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자신이 선물로 사들인 재료와 기초 상품의 가치 상승으로 추가 수익을 꾀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내부 고발자에 의해 아멕스에 제보되면서 그의 욕심은 끝이 났다. 대두유 선물 가격은 폭락했고 담보물로써도 가치도 거의 없어졌다. 결국 1963년 11월에 드 엔젤리스의 회사는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스캔들은 후폭풍도 거셌다. 드 안젤리스의 거래를 중개한 회사들은 모든 거래로 인해 다양한 은행이 회수 불가결한 대출금 3천7백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떠맡게 되었다. 이러한 주가 폭락 사태는 1963년 11월 22일 오후에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 총격 사건으로 발생된 공황과 겹치면서 260만 주가 매도되고, 다우 지수는 반시간만에 약 5%나 하락하게 되어 거래소가 83분이나 조기 종료되었다.

샐러드유 사기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드 안젤리스가 스위스 은행에 있는 개인 계좌로 5십만 달러나 보낸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모욕죄까지 추가되었고 결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드 안젤리스에 연계된 투자자는 51명의 개인 혹은 기업투자자들은 당시 약 1억 7천5백만 달러를 사기당했다. 하지만 드 안젤리스는 복역을 끝내고 출소한 뒤에도 또 폰지 사기를 시도했고 큰 손실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