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많이 들어봤던 폰지 사기 그 말의 시작을 알아보자. 폰지 사기란 새로 들어온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에 있는 투자자에게 수익금이나 배당금 혹은 투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의 금융사기를 말한다.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 위의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형식이 피라미드 모형 같은 구조여서 피라미드 사기 또는 다단계 사기라고도 한다. 그 폰지 사기의 시작이 된 인물인 찰스 폰지는 어떻게 사기의 어원이 되었을까?
청년 찰스 폰지, 천재 사기꾼이 되는 과정
이탈리아 출신의 찰스 폰지(Charles Ponzi)는 1882년에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의 환경을 알아보니 찰스 폰지의 집안은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폰지의 가정생활환경은 부유하지 않았다. 공부에 그다지 뜻이 없어 로마 라 사피엔자 대학교에 다니면서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수준에 맞지 않게 부유한 친구들의 돈 씀씀이를 따라 하며 놀다 보니 대학교를 4년 동안 다녔지만 학위를 받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1.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1903년 거대한 부를 일궈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미국으로 항해하는 동안 배 위에서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는 막상 배에서 내릴 때는 2달러 50센트가 가진 현금의 전부였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던 폰지는 미국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다시 캐나다로 옮기게 되었다. 몬트리올의 은행에서 보조 직원으로 일하게 된 그는 이 은행이 운영되는 방식을 눈여겨보았다. 이 은행은 주변의 은행들보다 두 배정도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예금 고객을 모집했고 은행은 금방 커졌다. 하지만 실제 수익금이 적어서 새로 들어오는 가입자의 예금으로 수익금을 지급했다. 거기에 부동산 부실 대출까지 생기면서 은행을 운행하기 어려워지자 은행장은 은행 자금을 가지고 멕시코로 도망을 갔고 은행은 문을 닫았다. 폰지는 이 은행의 수표장을 위조해서 쓴 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석방된 후 이탈리아 불법 이민자들의 밀수입 계획에 연루되어 애틀랜타 교도소에서 2년 동안 복역했다.
2. 국제반신우표권(IRC)으로 차익거래 사업을 활용
국제반신우표권이란 만국우편연합(UPU)에 가입한 회원국가라면 어디서든 우표로 교환할 수 있는 우표권이다. 이것은 우편을 보낸 사람이 우편을 받고 답을 보내는 사람의 우편 요금을 대신 내주는 역할을 하는 우표권인데, 구매 국가의 우표 비용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지만 교환된 국가의 우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우표로 바꿀 수 있었다.
폰지는 이 차익거래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을 구상하고 투자자들을 모았다. 당시에는 이 우표의 값이 다 달라서 이탈리아에서 저렴하게 구매하여 더 높은 가치가 있는 미국 우표로 교환해서 판매할 수 있다는 사업 계획을 이론상으로는 만들 수 있었다. 새로 들어오는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금으로 기존에 있던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하면서 더 많은 투자자 모집을 유도했다. 1919년 곧 사무실도 차리고 본격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폰지의 이름만 듣고도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제반신우표권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찰스 폰지의 회사는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지만 회사 운영을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익은 없었다. 그러므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계속해서 지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투자자로부터 들어오는 투자금뿐이었다. 초기에는 투자자 대부분이 노동자나 이민자들이었지만 점차 소문을 타고 부유한 투자자들이 유입되었고 보스턴의 경찰들도 투자자가 되었다. 폰지 회사의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지점을 만들어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더 이상의 행운은 찰스 폰지에게는 없었다. 1920년 보스턴 포스트지에서 폰지의 머니머신 운영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폰지 회사의 운영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금융 저널리스트인 클래렌스 배론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배론은 지금의 수익을 충당하려면 1억 6천만 개의 국제반신우표권이 유통되어야 하며 실제로 유통된 수량은 약 2만 7천 개 정도라고 지적하고 미국 우체국에서는 국내외에서 국제반신우표권이 대량 구매되지 않은 사실을 밝혔다. 이 기사에 대응하기 위해 폰즈는 현금으로 수익금을 지급하는 등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매사추세츠 지역의 검사나 은행의 이목을 끌었고 포스트지의 이어 나온 기사에서 폰즈가 과거에 저질렀던 수표 위조 유죄 판결과 자로시 은행에서의 일이 공개되면서 폰지의 평판은 땅에 떨어지고 결국 사기가 들통나서 우편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후로 하노버 트러스트 외 5개의 은행은 파산하고 개인 투자자들은 약 2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3. 감옥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간 찰스 폰지
찰스 폰지는 1925년 연방 법원에서 선고받은 형이 만기로 풀려 석방되었으나, 플로리다에서 또 다른 사기를 꾀하다가 적발되어 1933년까지 다시 복역했다. 정부 기관에서는 폰지가 숨긴 돈의 행방을 쫓았지만 더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석방되어 고향인 이탈리아로 추방되어 돌아간 폰지는 또 사기를 치려고 시도를 몇 차례 했으나 이름이 너무 알려진 탓에 이렇다 할 소득을 거두진 못했다. 1939년에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에 취직했으나 얼마 안 가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항공사가 문을 닫았다. 각종 질병으로 괴롭게 살다가 1949년에 사망했다.
찰스 폰지에 대해 알아본 후
폰지 사기에는 일반적인 금융투자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일정한 수익률이다. 자고로 금융 시장은 시장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하는데 폰지 회사는 늘 일정하게 높은 고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어서 투자금이 시장과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최대한 단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것이 관건이었다. 또 다른 두 번째 특징은 투자 종목이나 투자금에 대해 투자자에게 확실히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 곳에 투자를 하고 있다면 곧 사기꾼들이 약간의 미끼자금을 던져주고는 큰돈을 가지고 사라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폰지 사기는 응용되는 사기 수법이 너무 다양하고 많다. 투자 권유할 때 얼마의 수익률이 가능하다면서 투자를 권유하거나 짧은 시간에 높은 수익을 보장하면서 투자를 권한다면 폰지 사기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